50대허리아플때 6.25전쟁에서 한국이 졌다면? 한국전쟁때 미국 기밀문서의 충격적인 내용 :: 영큐의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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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에서 한국이 졌다면? 한국전쟁때 미국 기밀문서의 충격적인 내용
    군관련이슈 2022. 8. 12. 22:00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발발한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차 전투기가 단 하나도 없었던 국군은 전속력으로 후퇴하듯이 남쪽으로 몰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동강까지 적들이 내려왔고 그대로 부산 앞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지원이 도착했고 북한의 전차 부대를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북한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생각보다 강력했으며 유엔군은 꽤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낙동강 방어선을 중심으로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한국도 더 밀고 나가기 힘들었고 북한도 더 밀고 오기 힘들었습니다. 낙동강은 한국에게 있어 최종 방어선이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죠.

     

    미국은 일단 공산정권을 밀어내기 위해서 먼 한국까지 왔지만 생각보다 고전하는 전쟁이었습니다.그래서 한국을 버리고 유엔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손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한국은 낙동강에 뚫리고 이제 어디로 갈까요. 미국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바로 한국을 외딴 섬으로 옮겨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대만처럼 말이죠. 섬으로 한국인들을 이주시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정권을 집어삼켜지는 것은 너무나 싫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후보지는 바로 제주도였습니다. 제주도로 한국 사람들을 옮겨서 지금의 대만처럼 북한과 소련을 가까이에서 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구성된 화산섬이기에 하천과 같은 식수 공급원이 위치하기 힘듭니다. 갑자기 몇십만 명의 한국인이 제주도로 가게 된다면 너무 당연히 식수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것입니다.

     

    또한 북한과는 너무 가까워 차후 순식간에 공산화가 되기 쉬운 지리적 위치였습니다.제주도를 일단 제쳐두고 두 번째 후보지를 선정합니다. 그 후보지는 바로 일본의 한 섬이었습니다.

     

     

    일본의 섬에 한국인들이 가게 된다면 당연히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엄청난 마찰이 발생해 한국 정부가 제대로 수립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이 후보지도 탈락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후보지는 바로 서사모아 제도의 한국인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서사모아 제도는 남방구의 호주 옆에 위치한 섬입니다.

     

    한국에서는 하와이보다 더 먼 곳이었으며 주위에는 조그마한 섬들 말고는 바다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의 약 1.5배 정도 크기인 섬이었고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섬이었습니다. 인구는 9만 명 정도 살고 있는 작은 국가였습니다.

     

    주요 산업은 농업을 채택하고 있으며 타루 감자 양감자 빵나무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야자나무를 주로 많이 재배했다고도 합니다. 그곳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한국 사람들을 100만 명을 선별해 먼저 일본으로 보냅니다.그리고 서사모아의 원주민들은 다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민간인과 군인 정부 고위 관료를 포함해 최대 100만 명 정도 살 수 있는 주거시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인들을 천천히 배로 이주시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뉴 코리아 플랜 새로운 대한민국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북한에 귀속된 채 한반도에 남아 있고 그 뒤 한국을 이끌 사람들을 저 멀리 보내는 것입니다.우리가 상하이 임시정부를 세웠듯이 북한에 대응하는 임시정부를 미국이 세워주는 것이죠. 당연히 우리나라의 의견은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은 전쟁이 끝나고 기밀 해제된 미국의 비밀 문서에 기록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기획안을 미 8군사령관을 통해 육군 참모총장에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인천 상륙 작전을 실시한 맥아더 장군도 한국을 포기하는 작전을 고려했었다고 합니다.그대로 낙동강에서 피를 더 흘리지 말고 퇴각을 하려는 계획에 한 명의 미군 장성이 이 계획을 극구 반대하게 됩니다. 바로 월튼 워커 장군이었습니다.

     

    도망칠 생각 중이던 많은 미군들에게 워커 장군은 미군을 독려하고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스탠드 올 다이 작전이라고 버티거나 죽어버리는 작전을 감행합니다. 낙동강을 죽더라도 방어하라는 작전을 감행하며 한마디를 합니다.

     

     

    "나 월튼 워커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한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후퇴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직접 장례식을 치러줄 것이다." 이렇게 강경하게 목숨을 걸고 한국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낙동강 전선이 뚫리지 않은 것은 이 월튼 워커 장군이 매우 큰 한몫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적 열세를 돌파하고 추가적인 병력 지원이 도착하면서 인천 상륙 작전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전세가 역전되죠.

     

    하지만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일사 후퇴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한국이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가 찾아오자 이 계획을 다시금 검토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이 계획은 구상만 했을 뿐 실행되지 않았지만 만일 실행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사모와 제도로 대한민국을 옮겼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곳에 정착해서 여러 가지 체계를 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적응하는 데에 바빠 원래 대한민국 땅을 되찾는 일은 뒷전이 되었을 것입니다.거리도 너무 멀고 미국도 한국에게 지금만큼의 원조를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가 직접 농업부터 산업을 발전시켜 군사력을 발전시킨 뒤 북한과 대적했어야 하는데 과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애초에 전 국민이 빠르게 이주할 수도 없었기에 남겨진 국민들이 모두 북한에 흡수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을 때 대한민국의 섬 이주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 신기하지 않나요.이런 상황이 오지 않게끔 목숨 걸고 싸워주신 모든 6.25 참전 용사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