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허리아플때 초강대국 소련이 몰락하여 붕괴되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영큐의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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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강대국 소련이 몰락하여 붕괴되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군관련이슈 2022. 12. 6. 20:01

    만약 현재 경제력과 군사력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이 붕괴된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하던 초강대국 소련은 어느 날 붕괴되어 버렸죠 대체 글 이유는 무엇일까요? 

     

     

    굉장히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얽혀있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련은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공화국과 벨루르시 우크라이나 자카캅스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공화국 연방입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중심으로 소련이 형성되었으며 뒤이어 그 유명한 스탈린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1933년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죠. 당시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였고 독일의 야망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할 때 가세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이 소련의 뒤통수를 치면서 독일과 소련 사이에 '대조국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연합국 측에 합류하게 되죠. 제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극동 지역에서는 만주국과 한반도의 39도선 이북 지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냉전 시대에 들어서게 되고 미국과 소련은 두 가지의 체제 사이에서 세계를 둘로 나누며 대립하게 됩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했으며 소련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했죠. 소련을 형성한 연방국이 아닌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도 자연스럽게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경제는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소련 붕괴의 가장 핵심 인물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지도자로 선출됩니다. 그는 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여러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칩니다. 이때부터 소련이 표방하던 공산주의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개편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페레스트로이카'라 불리는 개혁 정책입니다. 개혁 정책은 공산당의 비리와 부패를 청산하고 헌법 사법 행정 정치 외교 등 소련의 모든 체제를 갈아업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공산주의의 핵심인 공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노동자가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해 생산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둘째는 '글라스노스트'라 불리는 개방 정책이었습니다.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반소적이라고 금지된 문화들이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이런 정책들로 소련의 개별적인 공화국을 존중하되 연방 체제는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여러 불만들이 속출했습니다.

     

    너무 서두른 변화에 비판하는 보수파와 오히려 개혁이 느리다고 비판하는 급진파가 부딪히게 되죠.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은 둘 모두에게서 지지받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소련의 공화국들은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소련의 국민들은 경제가 어려워 먹고살기 힘든 것이 공산주의 체제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소련의 생산력은 미국의 3분의1 수준이었으며 농업은 7분의1 수준이었습니다. 경제력과 소비생활에서 엄청난 격차를 불러들였죠 이런 경제 침체의 원인은 중앙계획 경제입니다. 공산주의가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본주의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기 힘듭니다.

     

     

    소련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국력을 경제력이 아닌 군사력으로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미국과 끊임없는 군비 경쟁에 지속했으며 외교 상황에도 굉장히 신경 써야 했으니 재정적 부담은 매우 가중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며 더욱 재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죠.

     

    결과는 국민들의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에스토니아와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카캅스 벨라루스 등 거의 모든 소련의 민족들과 소련의 위성 국가들까지 연이어 독립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정부는 최대한 시위를 진압하고자 움직였습니다. 이때 '브레즈네프 독트린'이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공산주의의 적대적인 세력들이 공산주의 국가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면, 진영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는 선언입니다.

     


     

    즉 국가의 유지를 위해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이죠. 이 정책을 근거로 시위 저지를 위해 소련이 중앙 유럽 국가로 무력 개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정리해보면 소련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방향으로 개혁하길 원했지만, 국가들이 아예 독립하는 것은 막고 사회주의 체제 안에 가두어 놓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다 보니 어느 세력에게도 지지받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의 이런 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이런 개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보수파는 결국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고르바초프를 별장에 연금시키고 통신선을 끊었으며 모든 정치 활동과 언론 운영을 중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쿠데타를 지지해 주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엘치는 쿠데타 세력을 비판하고 대중들에게 동조하지 말라는 연설을 진행했습니다. 쿠데타 세력은 예친에 체포하고자 했지만, 시민들은 예친이 있는 모스크바 크램린은 애워쌈을 지켰죠 마침내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후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 복귀했지만, 이런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후 고르바초프는 연방 정부 내의 모든 공산당 조직을 해체시켰으며 우크라이나 독립선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든 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미 언론에서는 구소련이라고 언급할 정도였죠.

     

    결국 1991년 12월 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로스 삼국의 정상은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벨라베자조약'에 서명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을 내려놓았고 러시아가 소련의 승계 국가임을 UN에게 승인받았습니다. 그리고 옐친이 대통령직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 강대국이었던 소련은 한 세기를 채 버티지 못하고 약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소련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였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국민들의 불만이 급증했고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내놓은 개혁 정책이 어느 쪽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내분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소련의 승계 국가인 러시아는 여전히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소련이 붕괴하게 된 원인을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