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오스트리아군은 그들의 제식권총으로 P-38 발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938년 독일군이 채택한 이 권총은 우수한 성능으로 인해 오랫동안 애용되어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됨에 따라 오스트리아군은 새로운 권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차기 권총의 성능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무게는 800g을 넘지 않도록 가벼워야 한다. 부품수는 40개 이하로 해서 구조가 단순해야 한다. 진흙과 눈 등에 노출 되어도 총알이 발사되어야 한다. 1만 발 이상 사격이 가능 해야 하며, 오발률은 0.1% 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은 당시로써는 매우 까다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총기 회사들은 오스트리아군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 '가스톤 글록'이라는 사람이 이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과 금속 가공에 대한 기술이 있어서 군용 나이프와 야전삽 탄띠 등을 만들어 군에 납품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권총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총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며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총기의 구조와 작동방식, 사격 방법에 대해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에게 한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면 총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작동 방식에 얽메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총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년 후인 1981년 '가스톤 글록'은 오스트리아 특허청에 자신의 17번째 개발품을 등록하게 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제품에 '글록17'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여러 회사들의 제품을 모아 시험 평가를 실시했는데 여기에서 글록은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무게는 661g으로 매우 가벼웠으며 부품은 34개에 불과해 구조가 매우 단순했고, 1만 발의 발사 시험에서 단 한번만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수한 성능에 가격까지 저렴했던 글록은 오스트리아군의 제식권총으로 선정되었으며 초도 물량으로 25,000 정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글록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9mm 탄을 사용하는 글록은, 탄창에 무려 17발을 장전할 수 있으며 외부로 헤머가 노출되지 않는 스트라이커 격발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외부에 안전장치가 따로 장착되어 있지는 않지만 방아쇠를 당겨야만 공이가 작동하도록 해 총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오발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으며, 방아쇠도 정확히 가운데 부분을 눌러야 움직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총렬은 강선이 없이 육각형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총알이 총렬에 강하게 밀착 되어 총구 속도가 매우 빨랐고 화약 찌꺼기 또한 잘 남지 않아 사용 수명도 길었습니다. 무엇보다 글록의 가장 큰 특징은 하부 총몸과 탄창이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일론6 계열의 고탄성 강화수지로 금속에 버금가는 강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플라스틱 특유의 탄성으로 인해 충격으로 부터 내부의 부품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몇몇 권총의 재질에 플라스틱을 사용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글록처럼 금속과 플라스틱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경우는 없었습니다.
1984년 글록이 유럽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미국의 총기 판매상 '칼 발터'가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왔다가 총포상에 전시된 글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글록이 사각형 플라스틱의 특별한 장식도 없는 못생긴 권총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사격을 해보고 난 후에는 이 총의 성능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가벼웠으며 적은 압력으로도 방아쇠가 당겨져 빠른 속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자동 권총을 세계 최대의 총기 시장인 미국에서 판매 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는 미국의 치안 상태은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마약과 불법 총기가 확산되면서 강도와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일반 시민들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거리를 거닐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기피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범죄자들은 소총이나 자동권총 등으로 무장해 화력을 더욱 키워나갔습니다. 반면에 미국 경찰의 제식 권총은 여전히 '리벌보'를 쓰고 있었습니다. 탄이 고작 6발 밖에 들어가지 않는 리볼버는 제장전을 위해서는 총알을 하나 하나 약실에 끼워 넣어야 했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발터는 미국의 각 경찰서를 돌며 글록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새로운 자동 권총을 원했던 경찰들은 글록의 성능에 만족하며 그들의 기본무장으로 재택하였습니다.이렇게 글록이 법 집행 기관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이 총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글록을 분해 해 워싱턴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해 보았는데, 글록이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금속탐지기에 찍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이 총을 대량으로 구입 해 테러에 사용하려 한다는 첩보까지 입수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총기 소유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은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는 플라스틱 권총을 미국으로 들여와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글록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글록 측에서는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 글록에서 강철 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권총보다 높아 금속탐지기에 매우 잘 탐지되며 워싱턴 공항에서의 실험은 보안요원의 부주의로 발견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글록이 공항 검색대에 탐색되지 않는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러한 글록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이 총에 좋은 홍보 수단이 되었습니다. 글록은 다른 어떤 권총보다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새로운 자동 권총에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글록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음악과 영화의 역할도 매우 컸습니다. 미국의 랩 음악에서는 Pop, Drop, Cop, Cock 같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글록은 이들 단어들과 라임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수들은 총을 뜻하는 단어로 글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또한 '다이하드2'라는 영화에서 테러범들이 이 총을 사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글록은 경찰과 범인이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글록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단순한 설계와 자동화된 공정으로 인해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글록 제조사는 처음에 가격을 240달러 정도로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최종적으로는 560달러로 책정되었습니다.
이가격도 다른 경쟁 모델보다는 싼 가격이었으며 이로 인해 글록 제조사는 글록 1정을 판매할 때마다 무려 65%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글록은 뛰어난 성능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미디어의 홍보 등이 더해지면서 경찰뿐만 아니라 FBI와 같은 법 집행기관과 여러 특수부대와 경호원들의 제식 권총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민간시장 또한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글록이 미국 전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자 총기소지 반대론자들은 글록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범죄에 글록이 사용되고 있으니 글록의 탄 수를 줄이거나 판매를 아예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몇몇 사람들은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글록 측에서는 막대한 금액으로 변호사를 고용 해 방어에 나섰습니다. 변호사들은 자동차 사고나 칼을 이용한 범죄는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물건에는 죄가 없으며 그러한 논리로 글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소송에 임할 때는 소송 당사자와 따로 접촉해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 해 주고 다시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그동안 압도적인 판매고를 올렸던 글록의 미국 내 특허가 만료되었으며 이에 따라 누군가 글록의 복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글록과 유사한 자동 권총을 만들었지만 기대한 만큼 판매고를 올리지 못했던 미국의 총기 회사들은 이제는 아예 글록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복제품 제조는 해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금속 가공 산업이 발달해 있으면서도 인건비가 저렴했던 터키는 글록 복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300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총기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콜트나 브라우닝 플라시니코프를 꼽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내구성과 충분한 장탄수 저렴한 가격 이 모든 것을 작은 권총 안에 모두 담아낸 '가스톤 글록'은 훗날 총기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